▲ 김법혜 스님(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이태원은 한자로 ‘梨泰院’이라 쓴다. 이태원의 이름은 한자만 3번이나 변했다. 조선 초에는 ‘오얏 나무 이(李)’자를 써서 이태원(李泰院), 임진왜란 이후에는 ‘다를 이(異)’로 바꿔 이태원(異胎院)이라 했고, 효종 이후에는 ‘배나무 이(梨)’로 고쳐 이태원(梨泰院)으로 해 글자와 의미가 변했다.

원래 이태원은 서울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원(院)이다. 서쪽의 홍제원. 동쪽의 보제원, 남쪽의 이태원과 인덕원은 서울 부근의 중요한 첫 번째 원이다. 지금의 이태원은 용산고등학교 자리다.

이태원의 지나온 발자취는 파란만장했다. 이태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슬픈 땅이란 역사가 떠오른다.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 당시 경쟁적으로 진격하여 고니 시 유키나카(소서행장)부대는 남대문으로,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부대는 동대문으로 입성했다.

처음 통과한 문이라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조선총독부는 남대문과 동대문을 조선고적 1. 2호로 지정했다. 그 후 이 문은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가 됐다. 당시 한양에 들어온 ‘가등청정’은 이태원에 주둔하면서 가등청정과 부대원들은 여자들을 겁탈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피난을 가버린 상황이라 피난 가지 못한 여자와 이태원 황학골에 있는 ‘운정사’란 절의 비구니들을 겁탈의 주대상으로 삼았다. 천주교 신자이자 반전론자인 상인 출신의 소서행장과 불교신자이자 주전론자인 장수 출신의 가등청정은 불교신자이면서도 여승들을 겁탈하고 운정사까지 불살라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가등청정은 불국사도 불질러 버렸다. 당시 왜병들의 피가 많이 섞인 곳이라 하여 이태원(異胎圓=다른 민족의 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부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포로나 귀화한 일본인들을 한데 몰아서 일종의 이방인 공동체 지역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곳이 지금의 이태원이다. 그래서 ‘이방인의 땅’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태원에는 조선시대부터 군사 관련 시설이 많이 들어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부가 이곳에 머문 이후 이태원은 군사지역으로서 본격적인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도 이태원에 주둔했고 이후 일본군 조선사령부도 주둔 했다.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태원 상권은 사실상 미군이 주도했다.

미군의 외박과 외출이 허용되면서 한때 기지촌까지 생겨났다.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태원은 이후 미군을 위한 유흥가로 거듭나 기지촌과 미국식 클럽 등도 우후죽순으로 선을 보였다.

이태원의 미군기지 중심으로 서빙고동 한남동 동부 이촌동 일대는 외국인 전용주택과 아파트는 물론 고급 외국인 주택단지까지 들어있다. 1960년대 이후에는 한국에 들어온 각국의 대사관마저 이태원에 입주했다.

이태원은 기지촌의 단속으로 퇴폐업소가 사라지면서 한국 속의 외국인 마을로 변화되었다. 이방인의 느낌이 드는 도심지 이태원은 아픈 역사가 있던 곳이 됐다. 이런 슬픔의 역사를 지닌 이태원에서 최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후진국형 대형 사고가 터졌다.

서울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살려 달라” 외침이 쏟아졌다. 압사한 아들, 딸을 찾는 부모들의 절규도 이어졌다. 대부분이 청년들로 알려진 사망자는 150명을 넘어섰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미성년 사망자도 있었다.

참담할 따름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사고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모두 같은 말을 곱씹었다. 싸늘하게 식어간 주검은 서로의 몸에 깔려 피해를 입었다. 참담하고 엄중한 현실을 보여줬다.

이날 이태원에는 10만여 명 가량의 축제 인파가 몰렸고, 그 중 상당수가 좁은 골목에 밀집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는 수습이 끝나는 대로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사고 원인을 내놓아야 한다.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면서도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지 않은 서울시와 용산구의 책임일까? 현장 대응을 잘 하지 못한 경찰의 책임일까? 모든 상황을 총괄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일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정부는 이태원이 위치한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은 수습이 먼저고, 사고 원인 분석이 그 다음, 마지막이 책임 소재다. 3년 만에 만나는 ‘노 마스크’ 야외 축제를 맞아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는데도 참극을 피하지 못했기에 쏟아지는 '사후 약방문' 처방이 더 야속하기만 했다.

배나무가 많아 이태원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태원이 또 한 번의 슬픈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