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법혜 스님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으나 사회적 분위기는 우울하다. 공자는 “사람이 멀리 생각하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라고 했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온다.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는, 심모원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는 늘 신중하여 작은 것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갑자기 닥치는 것은 아니다. 작고 사소한 게 하나둘씩 오랜 기간 쌓인 후에 큰일이 생긴다. 이 같은 사유는 중국 철학의 전통이기도 하다. 노장 철학의 시조인 노자도 저서 ‘노자’에서 “아름드리나무도 털끝처럼 가는 싹에서 생겨났고, 9층의 누대도 한 삼태기의 흙을 쌓아 올리는 것에서 시작되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라고 했다.

최근에 발생한 여객기 대형 참사 사고만 해도 마찬가지다. 멀리 생각하고 미리미리 작고 사소한 것부터 챙겼으면 이런 큰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남 탓하지 말고 사고 난 뒤 후회하지 말고 돌다리도 다시 점검하고 건너가는 자세가 절실하다.

이번 여객기 사고가 난 지방공항은 우리나라에 모두 15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공항 가운데 인천·제주·김포·김해공항 등 4개 큰 공항을 제외한 11개 지방공항은 해마다 손님이 없어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한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한 중앙 언론사에서 최근 국토교통부에 의뢰해 공항의 이용객 수요 예측치에 대한 자료와 한국공항공사의 실제 공항 이용객 집계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통보받아 보도됨으로써 알려졌다.

지방공항 가운데 실제 여객수가 예측 여객수보다 많은 경우는 제주, 청주공항 단 두 곳에 불과했다. 때문에 정부가 이런 지방공항의 활성화를 위해 공항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5년마다 지방공항의 이용객 수요 예상치를 포함한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고시까지 한 바 있다.

이번 사고가 난 전남 무안국제공항의 경우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개항 이후 9년째 적자 운영 중이다. 당시에는 연간 여객 수요 인원를 992만 명으로 예상하고 개항했다. 하지만 1년 뒤에 실시된 2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수립 조사에선 예측 수요가 줄고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공항 개항 이후인 2010년 4차 조사 때는 지난해 예상 수요치가 착공 당시 예상치의 1%가 조금 넘는 수요에 그쳤다. 무안국제공항의 지난해 실제 이용 여객 수는 31만1922명이었다. 이를 개항 당시 예측치와 비교하면 32배나 차이가 날 정도로 줄어든 셈이다.

정부의 지방공항의 이용객 수요 예측치와 실제 이용객 수가 최대 30배 이상 차이 나는 등 대부분의 수요 예측이 엉터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정치권이 눈앞의 선거에서 표를 모으기 위해 대규모 국책 사업인 공항개발 공약을 남발하고, 이를 떠안은 정부가 공항 주변 개발사업과 인프라 확충 등으로 인한 여객 유입 효과를 무리하게 부풀려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로 밝혀졌다.

정부와 지방공항 측은 뒤늦게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를 계기로 지방공항들의 취약한 안전 시스템이 재차 부각됐다. 지방공항 상당수가 무안국제공항처럼 안전관리 장비와 인력 등이 미흡한 데다 이용객 부족으로 공항 운영 역량까지 떨어져 자칫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참사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 항공기 비상 착륙을 돕는 안테나 시설인 로컬라이저다. 이 설비는 비행기가 비상 착륙 시 둔턱에 부딪쳐도 충격이 없도록 부서지기 쉬운 재질로 제작돼야 하지만, 무안국제공항은 그 반대로 단단한 콘크리트로 채워진 2m 높이 둔덕에 안테나가 설치됐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여수·광주·청주·포항 경주지방공항 등 4곳에도 콘크리트 구조물로 둔턱이 설치됐다고 한다. 정부는 뒤늦게 로컬라이저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격인 뒷북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지방공항의 엉터리 운영 현황은 더 참혹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연간 이용객이 2023년 기준 30만 명에도 못 미치는 곳이 8곳이며 절반이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경영난을 넘어 공항관리의 안전 관련 예산, 시설, 인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사고가 난 무안국제공항은 사고 당일 조류 퇴치 담당자 1명만 근무했고 퇴치 장비도 완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지방공항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애초에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공항을 무더기로 지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방공항이 난립하다 보니 이용객이 줄고 적자가 나면서 안전 인프라가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지방공항과 함께 허가를 남발해 9곳이나 생긴 저비용항공사(LCC)의 출혈경쟁도 부작용이 심각하다.

국내 저비용항공사 수는 우리 국토 면적의 98배인 미국과 함께 세계 1위라고 한다.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강인해지기 위해 분발해야 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력갱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게 철칙이다. 무안국제공항 참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의 삼가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