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명섭 충남일보 주필

전 세계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진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 관저 주변에선 현직 대통령의 체포 영장을 집행하려는 수사 당국과 이를 막는 경호처의 대치, 찬반 세력의 장외 집회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계엄사태로 ‘내란 수괴’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이 일로 우리나라는 국가 위상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치고 있고 국민들이 분열되는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 대한민국의 입법권과 행정권이 충돌할 때, 공정해야 할 사법부의 정의마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 사회적 신뢰를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나라가 엉망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사법부가 제 역할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에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어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를 꼽을 수 있다. 그는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무죄로 판결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이른바 '50억 클럽'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여 대법관의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는 의혹까지 받기도 했다.

사법부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최후의 보루의 기관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사법 정의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의혹마저 풍기고 있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사회적 혼란과 국민적 저항이 불가피하다.

역사적으로도 법치주의가 붕괴된 국가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기에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와 사법부의 부패에 대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정의롭고 공정한 사법 체계를 요구하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권력의 균형을 회복하는데 노력해 주길 바라고 있다.

사법부의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그 근간이 흔들리면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재판의 공정성 논란은 헌재뿐 아니라 법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논란도 이러한 사법 정의의 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법원은 대통령의 체포영장에서 형사소송법 규정을 배제하는 내용을 기재했는데 이는 판사가 입법권을 법치로 위배한 행위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판사 쇼핑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에 따라 법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도 그렇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심리 과정에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다면 잘못이다. 탄핵 심리 절차를 서두르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다. 헌법이 정한 180일의 탄핵 심리 기간은 공정한 심판을 받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 심리 속도뿐 아니라 국회의 탄핵소추 내용 중 내란 관련 사항도 심판 대상으로 할 것인지도 자체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심리를 빨리 진행하기 위한 내란 혐의를 일방적으로 뺀다는 것은 심리를 빨리 진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릇된 것이다.

만약 헌재 심리가 빠르게 진행되어 윤 대통령의 탄핵에 인용된다면, 대통령 보궐선거를 일찍 치러지게 한려는 착각이 아니길 바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유리하게끔 하는 것도 오해받기 쉬운 일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선거법 재판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선이 치르려는 상황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누가 봐도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않아도 입법부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온 사법부가 불신이 겹친다면 국민은 누굴 믿고 의지하란 말인가? 죄를 짓고 1, 2심에서 정치할 자격이 박탈된 사람이, 대법원 판결을 미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선거법은 ‘6.3.3 강행규정’(1심 6개월, 2,3심 각각 3개월) 준수가 시험대에 올라왔기에 국민들은 눈에 힘을 주고 사법부를 지켜볼 것이다. 이 같은 준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법부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재판을 독점한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야 삼권분립을 지탱할 수 있다.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마지막 보루다. 정의로운 판결만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다. 법관들의 소명 의식이 무겁게 느껴지는 때다. 판결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오면 판사가 나쁜 놈, 유리하게 나오면 정의의 사도. 이런 식으로 사법을 불신하면 혼란은 끝이 없다.

제 입맛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나 다를 바 없다. 민중과 거야의 도(度) 넘는 사법 위협 재판이 있을 때마다 법원 앞의 대규모 집회는 판결에 영향을 주려는 ‘압력 시위나 다름이 없다. 검사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고 수사와 재판에 겁박을 가한다면 이것도 명백한 사법 방해다.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지지자들이 대규모로 법원에 몰려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법정 밖에서 시위와 위협으로 재판을 방해해서도 안된다. 법치의 근간을 위협받도록 법원이 자초한 건 없는지, 사법 불신으로 위상 추락에 잘못한 건 없는지 뒤돌아 볼 필요도 있다.

제발 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자기편에 유리하면 '사법 정의’고, 불리하면 '편파 판정’이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낯 두꺼운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부디 정부·여당과 야당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라는 뜻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옛말을 되새겨보길 바란다.